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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대해(不知大海), 꽃과 같은 청춘, 활짝 피는 세상을 위하여
  • 기사등록 2016-04-14 00:50:19
  • 수정 2016-04-14 00: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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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세상에 있는가? 왜 사는가?” 간디는 말했다. “삶의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세대가 방향을 잃고 낙담하는 시대다. 캠퍼스에서 아름답게 피었던 꽃이 일자리 부족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스펙을 쌓고자 고민하는 청춘들이 넘쳐난다. 삶에 지쳐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갈 곳이 없어진다. 내가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아야하는 이유다. 청춘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본다. 갈 곳이 아닌 다른 길로 가야하나 고민하는 청춘들이 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살고있는 곳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벌레가 얼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은 여름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 문제 밖에 모르는 사람과 더불어 도()를 노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바에 속박되기 때문이다. 장자의 추수편(秋水編)에 실려있는 이야기다. 서양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앙시앙 레짐하의 계몽사상가들은 기성 체제의 각종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인한 인권 유린으로부터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것을 역설했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있어서 박애적 요소는 권력에의 의지보다 중요하지 않다. 인간 해방, 인도주의라는 고귀한 이상의 근저에 계몽주의는 전통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정도의 새로운 도덕기술을 안출해내며 오늘날에도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학자 쿤의 말처럼 어제의 신화가 오늘의 과학이 될 수 있고 오늘의 과학이 내일의 신화가 될 수 있다.


 

권력의 칼(?)을 쥔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배우지 말아야할 것을 배워 또는 자기가 배운 바에 노예가 되어 청춘들을 더 괴롭게 하기도 한다. 내 생각과 내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적지않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닌이상 정답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여러 방향에서 사태를 관찰하고 이에 따른 여러 방책들을 논의하면서 우리들 삶의 조건을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조금씩 개선해 나갈뿐이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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