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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와 교훈) 日 제국주의 침탈의 '상처'와 '딱지'
  • 기사등록 2016-03-08 09:41:34
  • 수정 2016-03-08 0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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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대문 형무소, 1908~1909년 사이에 만들어진 경성감옥(京城監獄)

 

() 신영복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감옥은 사회의 모순구조와 직결된 공간이라며 우리 시대와 가장 끈끈하게 맺어져 있는 공간이라고 언급했다. 우리에겐 일제 제국주의 침탈과 함께 식민지 국가를 통해 강제적으로 부과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우리는 한 때 일본 제국주의 조선침략의 희생양이 됐다. 일제가 식민지 통치정책을 펴기위해 첫 단계의 하나로 추진한 것이 본격적인 감옥시설의 확충이다. 악명높은 경성감옥(뒤에 서대문형무소로개칭), 서대문출장소는 1908~9년 사이에 신축되어 보통 4~5백명, 많을 때는 700명까지 수용하는 대형 수용소로 자리 잡았다. 일제의 한국사법부 침탈과정은 1909한국의 사법 및 감옥사무의 완비가 인정될 때까지 한국정부는 사법 및 감옥사무를 일본국 정부에 위임할 것이라는 각서를 강제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제국주의 침탈과 함께 식민지 국가를 통해 강제적으로 부과 한 악행 중 하나로 위안부를 들 수 있다. 유엔 여성차별위원회는 이달 7일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본 정부가 취해온 여성의 지위개선 노력에 관한 최종 견해를 밝힌다. 일본 정부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정부조사에선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고, 스키야마 심의관은 직접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인식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일본군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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