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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광대’ 그리고 긍정적 인생
  • 기사등록 2015-12-27 00:28:35
  • 수정 2016-06-10 23: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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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 피카소作)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수많은 유리창이 서로에게 맺힌 이미지를 다 토해 놓을 때 세상은 풍성한 색의 하모니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피카소는 세잔, 드랭, 마티스, 루오, 쇠라, 반 고흐와 더불어 후기 인상파(post-impressionism)로 불린다. 이들은 인상파를 계승했다기보다 오히려 인상파에서 탈피하거나 인상파를 극복했다. 입체파와 추상미술의 길을 연 세잔의 영향을 받은 피카소는 고도로 추상화된 분석적 입체주의(1910~1912)의 시기에 접어들기이전 색조 면에서 과거 어두운 시절을 나타낸 청색에서 벗어나 복숭아색(주황색)을 선호한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1904~1906) 피카소는 몽마르트에 정착하면서 여러 친구를 만나고, 그의 최초의 연인이 된 페르낭도 올리비애를 만났다. 보다 긍정적인 인생과 평온한 심리 상태로 전환되면서 과거 회의와 희망이 교차하던 청색 풍에서 벗어나 복숭아색(주황색)으로 우호적이고, 부드럽고,온화한 분위기가 느끼는 그림을 그렸다. 당시 작품 광대’, ‘공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곡예사 가족은 어릿광대나 곡예사가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닌 그 생활의 이면을 분석해 애수를 담은 명작이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그린다는 그의 말처럼 !

이 시기 피카소는 회화기법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잉크와 크레용,오일,마분지,파스텔 등을 캔버스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했다. 피카소는 살면서 힘든 때 청색으로 화폭을 흔들었다. 자전거가 넘어질 때 넘어가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 듯 !, 흔들린 후 설 수 있게되자 색채가 밝아지고 복숭아색으로 바뀌었다. ‘광대의 장미색과 노랑은 우호적이고 친절하고,부드러움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우리가 힘든 세상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지금 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덧붙이는 글]
후기 인상파는 1910년 영국의 그래프런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보고 영국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1866~1934)가 붙인 이름이다. Post-impressonism 우리나라에서는 후기 인상파라고 번역함으로써 의미에 다소 혼란이 잇다. 후기 인상파라고 하면 마치 인상파 운동의 후기에 해당하는 미술 흐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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