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자신을 인정하고 중용해 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동 시대에 그는 품고있는 사상도 옳게 살려보지 못한 채 상가집 개(喪家之狗)란 말을 낳았다.
노(魯)나라 정공 14년, 공자는 노나라의 법무장관으로서, 선정에 힘썼으나 왕족인 삼환씨와 뜻이 맞지않아 끝내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공자는 십수 년 동안을 위, 조, 송,정,진,채 등 널리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 다녔다.
공자가 정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쩌다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버린 공자는 홀로 성곽의 동쪽 문앞에 우두커니 서서 제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나다가 본 어떤 정나라 사람이 스승을 찾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그 이마는 요(堯)임금과 비슷하고 그 목덜미는 고요(순임금과 우임금을 섬긴 어진 재상) 같았고, 그 어깨는 자산(공자보다 조금 일찍 나온 정나라의 재상)을 잘 닮았습니다. 모든 생김이 옛날에 성현이라 불리운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허리께에서 그 아래로는 우임금에 미치지 못함이 세치(寸)나 되고 지쳐빠지고 뜻을 얻지 못한 듯한 꼴은 상가집 개 같더군요.”
“아 그 분이 바로 우리 스승님이야.” 제자들은 곧 동문으로 달려가 공자를 찾아냈다. 그때 자공이 정나라 사람이 한 말을 전했다.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습에 대한 비평은 전부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상가집 개 같다는 표현은 아주 그럴 듯 하구나” 상가집 개(喪家之狗)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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