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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와 파놉티콘 그리고 소수의 보호
  • 기사등록 2015-10-14 20:49:57
  • 수정 2015-10-14 20: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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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바로타임즈=장혜린,장훈녕기자]

 


 근대 공리주의 개혁가들은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사회적 양심의 발로','비참에 대한 연민'에 입각해 활동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능률과 값싼 정부, 완전한 정치경제학의 확립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근대 공리주의는 인간을 기계적이고 비 인격적인 틀에 구속하는 데 관심을 경주했다.

 

                                                        (파논티콘)

대표적 공리주의자인 벤담은 이러한 기본시각에서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감시소(Inspection House) 건축형태를 창안해 적극 선전하면서 구체화를 위한 집요한 노력을 전개했다. 파놉티콘은  원래 일차적으로 감시소를 위한 용도로 구상되었지만, 벤담은 그의 모델이 감시소뿐 아니라 학교, 공장,노역소,병원 등에도 두루 유용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파놉티콘은 누구든지, 또 어떤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감시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주장되어졌다. 그는 자신이 입안한 파놉티콘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도덕을 개선시키고, 건강을 보전시키며, 근면성을 고취시키고 교육을 보급하며, 공공부담을 경감시키고, 경제를 반석위에 놓이게 하며, 고디어스의 매듭처럼 풀기 어려운 구빈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이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건축형태를 통해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이는 여태껏 전례없는 정도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양식(a new mode of obtaining power of mind over mind)이며,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파놉티콘적 시설은 "악당을 갈아서 인간으로 만들고, 나태한 자를 갈아서 근면한 인간으로 만드는 기계"로 표현되었다. 혹은 벤담의 또 하나의 야심적 기획이었던 빈민에 대한 노역소(industry house)는 불순한 사회의 찌꺼기를 순은으로 만드는 것(dross into sterling)에 비유되엇다. 노역소에 있어서도 일상생활 및 노동에 대한 엄격한 규율, 쉴새없는 감시와 감독, 입소자의 신상 등록, 열등처우의 원칙등 감시소와 유사한 통제기능을 추구하고 있다.

 

벤담은 스스로를 박애주의자로 묘사했으나, 오히려 그는 다수의 이익이란 미명하에 "소수의 최대의 불행(the greatest misery of the few)을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고있기도 하다. 이는 다소 지나친 감도 없지않다. 벤담 기타 공리주의자들은 누구나 시장사회의 성원이 자동적으로 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벤담은 개혁가이지만 근대사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덧붙이는 글]
벤담은 자유방임의 영역과 입법, 정부가 개입, 통제할 영역간의 구별을 분명히 하고자 설정한다. 금전적 이익의 취득이 지배적인 동기가 되는 상공업의 영역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공익간의 조정은 자유로운 계약과 자유경쟁에 맡겨질 수 없다. 즉 사적 영역은 개별이익간의 자연적인 조화나 조정이 가능한 까닭에 정부의 작용을 통한 개입을 요하지 않는다고 본다. 반면 자연적 조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영역에서는 정부는 상충되는 이익을 사회적 공리성의 기준에 의거하여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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