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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현대사회의 권위 그리고 원초적인 창의성의 상실
  • 기사등록 2015-10-10 14: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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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바로타임즈=장혜린,장훈녕기자]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과도하게 강했던 것의 반동 작용으로 어머니와 자녀간의 애착 또한 매우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 하면 눈물 안 흘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어린이들은 과도한 아버지의 권위의 두려움이 과도한 어머니의 애착관계에서 일부나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건전한 방향에서 보면 엄부자모(嚴父子母)의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자아의 균형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자였으나 후에 정신분석적 사회이론의 일원이 된 래쉬(Christopher Lasch)는 '자아도취적 문화(culture of Narcissism)라는 저서에서 현대사회 속에서 변화하는 자아의 특징을 미첼리히와 같이 비판이론가들이 다루지 못한 어머니 사랑의 상실까지를 거론하면서 가족의 감성적 교감결핍을 지적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비판이론가들과 달리 아버지의 권위가 국가의 관료적 권위로 대체 되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전반적인  사회적 붕괴를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의 권위상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애매하게 함으로서 어제와 내일은 없고 오직 현재를 어떻게 즐겁게 살 것인가 만을 생각하게되는 자아도취적 문화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도취적 문화 속에서는 위대한 일, 혹은 훌륭한 업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된다. 어떻게 하면 젊게 보이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만이 관심이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cultural Marxists)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 school) 혹은 비판이론가들(critical Theorist)는 마르크스의 인간소외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융합하여 문명과 사회를 논한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호르카이머(Max Horkemier)는 산업사회에서 가정은 국가의 관료기구에 의해 그 기능이 상당 부분 대체되었으며, 아버지의 도덕적 이미지도 산업과 과학의 세속적 이념에 의해 파고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그는 가정은 부부간의 성적 만족만을 주는 장소로 전락하였기에 부모의 이미지가 자녀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말은 서양의 가족구조가 부부중심으로 바뀌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하여 호르카이머는 아버지는 아들에겐 선을 가르치는 주체가 되며 이는 아버지를 닮으려는 내향화(internalization)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고있다. 내향화란 정신분석적으로 자식들이 부모의 성격을 미워하면서도 이를 본받게되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내향화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비판능력과 자율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는 산업사회에서 가족의 해체는 아버지의 내향화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비판정신을 앗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도르노(Theodor W.Adorno)는 호르카이머와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 역시 아버지 권위의 상실을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의 권위는 아들에게 선을 지향하는 좋은 자아(Good Ego)를 형성시키는 데, 아버지 권위가 상실됨으로써 외부적 권위의 공표 속에서 생존만을 생각하는 무기력 증세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적으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도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무기력은 자아 도취주의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이유로 외부의 권위에 굴복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때문에 독일의 나치즘(Nazism)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버지의 역할 감소가 그 자녀들에게 전체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좋은 자아를 형성시키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르쿠제(herbert Marcuse)역시 호르카이머 그리고 아도르노의 주장과 흡사한 지적을 하고있다. 그는 산업사회에 어린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정형의 세계(A Ready Made World)에 의해 조작되고있다고 보고있다. 예를 들면 장난감의 경우도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정형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원초적인 창의성을 상실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현대 어린이 장난감은 다양한 것 갗아도 그 재료나 형식이 이미 성인들에 의해 정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정형성은 어린이들의 본질적인 창의성을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마르쿠제가 지적하는 정형성의 세계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산업사회는 가정의 부모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서 근대화라는 객관성만이 강조된 채 창조성없는 무기력증의 무의적 구조속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아버지의 권위상실에 따른 비판정신의 결여를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정신분석학 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는 '아버지 없는 사회'를 쓴 미첼리히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산업사회에서 어린이 중심이 아닌 부부 중심의 가족구조는 아버지의 권위를 앗아갔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역할까지도 빼앗아 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그는 어린이들은 자기의 부모로부터 어떤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산업사회의 한 특징으로 부가되는 익명의 기능(Anoymous Function)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산업사회로의 변화에서 어머니 역학 감소까지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비판이론가들보다는 더 입체적인 분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덧붙이는 글]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흥미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인간은 무한의 자유를 느낄 때 오히려 어디에 소속되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산업사회에로의 진입에서 느껴지는 개인의 자유가 오히려 공허함을 야기 시킴으로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던 소속감을 요구하는 무의식이 작동하여 나치즘이라는 구속에 스스로 함몰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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