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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노동 시장, 산업노동자층의 형성과 저항형태 그리고 갈등극복은?
  • 기사등록 2015-10-04 17:34:30
  • 수정 2015-10-27 23: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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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바로타임즈=장혜린, 장훈녕기자]



 올해 한국사회는  쳥년 고용절벽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선문제를 둘러싸고 각계의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지난 9월15일 오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통과시켰지만 경영계와 노동계의 어느 쪽에서도 합의문 내용에 대해 비판이 뜨겁다. 경영계에선 무늬만 합의라 하고 노동계에선 노사정 합의로 해고가 늘어날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역사상 노동문제는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풀어내기 힘든 난제로 자리잡고 있다. 노동문제는 서양사에서 산업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은 가족적 규모로 영위되던 마스터의 작은 작업장을 수많은 노동자군으로 조직된 근대적 대공장으로 대체시켰다. 이는 비단 생산력상의 일대 혁신일 뿐 아니라 생산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방식과의 단절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도제와 마스터 간의 인격적, 신분적 유대는 산업혁명으로 금전적 계약관계에 의해 대체되었다.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똑같이 매매대상이 되며, 이는 소위 자본주의적 임노동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근대적 임노동은 고대의 노예나 중세의 농노와 달리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단지 법적 외관에 지나지 않았다. 열악한 작업환경에다. 자본가의 절대적이고 통제받지 않은 전제적 권력이 자행되는, 타락과 고통, 야만과 악덕이 뒤섞여 있는 공장은 한때는 완벽한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기도했다.

 

산업혁명과 공장제의 발전은 풍부한 노동공급을 요구했다. 노동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자본가는 원하는 노동력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었다. 영국의 경우 자본의 원시적 축적기에 행해진 대규모의 엔클로저로 인한 농민의 추방, 노동인구의 이동에 대한 제한의 철폐, 소생산자층의 양극분해, 18세기 후반의 사망률의 감소와 출생률의 증가에 따른 인구의 자연증가등은 새로운 공업도시에 풍부한 잠재적 노동력을 퇴적 시켰다. 공장노동력의 기원은 이같이 부분적으로는 강제로 일자리를 빠앗긴 집단에서, 부분적으로는 종전의 일자리보다 더 좋은 기회를 추구하는 집단에서 나왔고 거기다 인구의 자연증가율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기계의 발전은 새로운 노동력을 창출하게 했다. 기계가 근육의 힘을 불필요하게 하는 한, 그것은 곧 육체적 발달은 미숙하지만 손발의 움직임은 비교적 유연한 노동자를 공장에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여성과 아동은 기계제 공업의 발전과 함께 유연한 사회적 노동력으로써 비로소 확고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기계와 공장은 성과 연령의 구별없이 노동자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자본의 직접적 지배하에 편입시킴으로써 임금노동자의 수를 증가시켰다.  그들은 또다른 결정적 이유로 자본가에 의해 환영받았다. 그들은 남성노동자보다 유순했고 주어진 일에 수동적으로 복종하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성인 남성 임금의 절반이하의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었고 , 불황이 닥칠 때 이들은 얼마든지 해고시킬 수 있었다.

 

산업혁명 및 그와 연관된 일련의 변화는 심각한 사회적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산업혁명을 경과하면서 사회 계층이 양극화 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실업과 빈곤의 밑바닥에 떨어진 근로빈민( the laboring poor)들의 생활상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소극적으로는 범죄와 같은 법위반으로, 나아가 자생적 봉기 형태인 사회적 소요와 폭동이 빈발했으며, 점차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운동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체제에 대한 불만은 이들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경제에 제대로 적용할 수 없었던  소규모 실업자들, 장인층등도 변화의 희생자들이었다. 따라서 산업체제에 대한 반발은 근대적 임노동자에 국한하지 않고, 이들 집단의 저항도 역사의 한 단면을 이루고 있다.

 

공장제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파는 이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노동자를 공장에 집중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는 동일하고 따라서 노동자들은 고용주에 대항하여 단결하게 되었다. 저항의 방식으로는 개인적인 범죄로 부터, 다소 비조직적인 반발을 거쳐 조직적인 투쟁으로 진전하게 되엇다. 이러한 노동자의 결사에 대해 정부는 결사금지법을 제정하는 등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였다. 그 속에서 노동자의 결사는 공제조합(friedly society)의 형태로 존속하기도 하고, 러다이트(Luddites)라는 비밀결사에 의한 기계파괴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세기 초엽의 노동운동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면은 계층상승의식과 야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오웬의 영향을 받아 1834년에 결성된 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은 50만 이상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개선 뿐 아니라 사회개혁까지 지향한 것이었다. 아마도 19세기 전반 영국 노동운동의 정점은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권 확대를 통한 노동자층의 대표성 획득을 지향했던 이 운동은 1848년을 고비로 쇠퇴하게 되고, 이후에는 노동자층의 경제적 요구를 우선시하는 노동조합 운동으로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된다.

 

어쟀든 노동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 함꼐 풀어내기 힘든 난제로 자리잡았으며, 개별기업과 전 사회적인 측면에서 노동문제는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 보면 노사정 합의문이 만들어질 당시의 대타협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노사정위 무용론까지 나오는가 하면 학계마저 자유시장론자와 진보주의 학자간에 평행선을 달리는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는 상태다. 우리 역사상 서양이 겪은 산업혁명과 같은 단계를 거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정보화혁명은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문제를 둘러싼 사회발전은 여전히 지체 상태다.

 

시사바로타임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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