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안이함을 구하지 않고 일은 험난한 것을 피하지 않음은 신하된 도리이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마디(반근착절)를 만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부딪져 보겠는가" 후한서 우후편에 나오는 고사로 우후가 한 말이다. 험난한 상황을 만났을 때 흔히 반근착절(槃根錯節)이란 비유를 쓴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표현한 말이다. 이말이 유래를 따라가 보면 이렇다
우후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뛰어난 수재로 열 두 살 때 이미 '서경'에 정통했다고 한다. 그가 태위 이수의 추천으로 낭중의 벼슬에 있을 무렵이었다. 이민족이 병주와 양주를 침입해 왔다. 그러자 외척으로 세력이 등등했던 대장군 등질은 국비 부족을 이유로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때 우후는 강력하게 등질의 의견을 반대했다.
옛 부터 열사무인(熱士武人) 을 많이 배출한 양주 같은 땅을 오랑캐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회의는 우후의 승리로 끝났다. 이 일로 등질은 우후를 미원하게 되었다. 그 해에 우연히 조가현에 폭동이 일어나 장관이 살해되는 참사가 있었다.
이때다 싶어 등질은 우후를 후임장관으로 임명해 폭도들을 토벌할 것을 명령했다. 복수를 꾀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후의 친구들이 그의 이 지독한 불운을 위로하러 왔다. 그러나 우후는 태연히 말했다.
"뜻은 안이함을 구하지 않고 일은 험난한 것을 피하지 않음은 신하된 도리이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마디(반근착절)를 만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부딪져 보겠는가"
조가현에 부임한 우후는 등질의 바램과는 달리 무사히 폭도들을 평정했다. 그 뒤로도 언제나 이 '반근착절(槃根錯節)'을 피해 가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웠다고 한다.
손 경 휘 기자 kyshon@sisabarotimes.com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isabarotimes.com/news/view.php?idx=1249